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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령의 문화

보령의 문화 글의 상세내용
제목 무신 이지인
구분 역사인물
내용 진주성(晋州城)을 지키며 전사(戰死)한 무신(武臣) 이지인(李志仁)

임진왜란(壬辰倭亂)때 우리나라 삼대첩으로 부르는 그 대첩의 하나인 진주대첩(眞主大捷)!

나라를 지키기 위해 자리잡지 못한 병사들을 모아 오직 구국의 일념에 적과 싸우다가 조국의 넋이된 육천의 영령들! 여기 그 영령가운데 우리나라에서 가장 촉망되는 무관으로 각광을 받았던 이지인(李志仁)도 있다.

그는 고려말엽의 명헌 이자송(李子松)의 후예로 보령(保寧)의 청소에 태어났다. 그는 어려서부터 무예를 갈고 닦아선 나날이 무관이될 꿈을 키워선 16세때 무과에 무난히 급제한 부인이다.

선조(宣祖)때 그가 무과에 급제하자 장안이 떠들석했다. 16세의 어린 청년이 무과에 급제하였으니 떠들석 할만했다. 그가 벼슬길에 올라 얼마 안돼서 임진왜란(壬辰倭亂)이 터졌다. 그는 무관으로서 여러 벼슬을 거쳐서 숙천부사로서 재임하게 되었다. 왜구들은 물밀 듯이 밀려와서 신의주(新義州)쪽으로 또 한편은 함경도 회령(會寧) 쪽으로 밀고 올라갔다.

그는 겉잡을수 없이 침공해오는 왜구를 어떻게 무찌를까 하고 여러 가지로 궁리 해봤지만 우선 병사들의 훈련이 문제였고 무기가 문제였다. 그는 어떻게하면 오랑캐를 이 나라에서 몰아내느냐 하는 궁리와 병사들을 모아 훈련을 시키다가 진주성(晋州城)에서 우리병사들이 적과 싸우기 위해 모여들고 있다는 전갈을 받고 그는 군사를 이끌고 그쪽으로 달려갔다.

진주성(晋州城)은 남강(南江)을 끼고 삼면을 육지로 되어있으나 성(城)부근에 인공호를 만들어서 성안에서 성을 지키기는 좋은 곳으로 널리 알려져 있었다. 그가 군사를 이끌고 진주성(晋州城)에 도착하자 많은 군사들이 운집해 있었다. 그가 항시 받드는 창의 사 金千鎰의 군사를 비롯하여 충청병사 황진(黃進)장군도 충청의병사 700명을 이끌고 와 있었고 가까운 고향근처인 남포현감 송제지(宋悌知)도 군사를 이끌고와 있었다.

우리군사들의 사기는 드높았고 진주시민(晋州市民)들도 전사가 되어 싸울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오랑캐들은 가등청정의 25,600명과 소서행장의 26,100명 우희전수가 의 18,800명 모리수원과 소조천융경의 22,300명의 대군으로 또한 남강 우측으로는 길천광가가 예비병력을 대기하여 93,000여명으로 쳐들어오기 시작하였다.

명나라 군사의 원병이 온다는 전갈은 있었으나 소식이 없었다. 오랑캐인들이 인공호수의 뚝을 헐고 물을 빼기 시작하자 화살을 잘 날리는 군사들은 성벽에 세우고 그 쪽으로 쏘나기처럼 화살을 날리자 개나 돼지처럼 쓸어지더니 왜적들이 도망가기 시작했다.

그들이 도망가더니 이번에는 넓은 나무토막으로 다리를 놓기 시작하였다. 이지인(李志仁)은 그가 싸움터에 나올 때 우국의 일념에서 동행하게된 형 이경인(李景仁), 이덕인(李德仁)과 함께 충청병사 황진과 성벽에 올라서 그들이 나무 판목을 성벽쪽으로 가까이 놓았을 때 화살에 불을 당겨서 쏘나기 쏟아지듯 퍼부었다. 그들이 놓은 나무다리는 삽시간에 불이 붙어 활활 타더니 재가되어 물에 가라앉았다. 그들의 침공은 이렇게 해서 하루는 패전으로 돌아 갔다. 한참 고요가 흘렀다.

이지인(李志仁)은 틀림없이 그들이 어떤 계략을 짜는 것이라고 주의깊게 성벽을 도는데 어느덧 어둠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성안도 조용했고 성문밖에도 조용했다. 밤이 점점 깊어갔다. 쥐죽은 듯 고요만 흐르고 있었다. 밤이 너무깊어서 자정이 넘었을 때 요란한 함성과 함께 조포(鳥砲)소리가 우렁차게 들려오더니 적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그는 망루에 올라서선 병사들에게 조용히 할 것을 당부했다가 적이 성벽에 기어 오르기 시작하자 일제히 공격을 했다. 이날부터 혈투는 시작되었다. 그날 저녘 밀려간 적은 그 이튿날도 다음날도 밀려왔다. 6천의 군사로 9만의 오랑캐와 오랑캐와 싸우는 우리군사들은 참으로 용감했다. 오랑캐가 한번 공격 해오면 이쪽에서도 희생이 컸었다.
싸움이 시작한지 이틀 사흘 그럭저럭 6일이 지났고 싸움이 시작한지 7일이되었다. 장수들도 하나, 둘, 전사하기 시작했다. 운명의 날인 26일 적병들이 대대적인 공세로 나오자 독전하던 충청병사 황진(黃塵)도 적의 총탄을 맞고 눈을 부릅뜬채 전사하였다. 병사들은 용감 하였다. 오랑캐들은 성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지인(李志仁)은 칼을 뽑아들고 「용천부사가 여기 있다.」하고 적진으로 뛰어들어가선 적을 마구 무찌르다가 전사했고 그의 형 경인(景仁)과 덕인(德人)도 용감하게 싸우다가 모두 싸움터의 이슬로 사라졌다. 나이 16세에 무과에 급제하고 장래가 촉망되던 숙천부사 이지인 (李志仁)은 촉망되는 힘의 뿌리를 조국을 위한 죽엄으로 용감하게 싸우다가 전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때는 1594년 계사 6월 29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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